행사소개

나주스토리

나주목

변하지 않는 1000년 고을

나주목은 한양과 그 고을의 모습이 비슷하다 하여 작은 서울이라는 뜻을 가진 소경이라고 불리였다.

나주목의 역사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한다.
나주의 옛 지명은 금성 이었으나 고려 초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의 후방 지역인 금성을 공략하기 위해 와서 나주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인 오다린의 딸, 훗날 장화왕후라 불리는 여인과 결혼하게 되는데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인 2대 왕 혜종의 탄생으로 나주는 어향, 왕의 고향 이라 불리우게 된다.


전라남도 지방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는 나주가 왕건의 편에 섰고, 이 공로로 나주는 고려 성종 때 목으로 승격된 후 일제강점기 전까지 1000년 간 전라도 지역의 핵심 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공을 피해 잠시 나주로 와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도 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과 동학농민 운동, 일제 강점기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나주역 학생운동과 같이 역사의 급류 속에서 그 존재감을 여김 없이 보여주었다.

개항 이후, 1895년 나주군으로 개칭 되며 13도제의 실행으로 광주가 새로이 전라남도의 중심점이 되었다. 이로서 나주는 오랫동안 누려왔던 전라도의 중심도시 구실을 광주에 양보하였고, 영역의 축소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척식회사의 토지소유권 주장, 소작료 징수 등 탄압과 횡포에 맞서 싸우는 궁삼면 토지분쟁과 같이 나주의 정신은 여전히 강했다.

비록 그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끊임없이 그 사명을 이어가는 잿불과 같이 나주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그 흔적과 함께 고요하게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900~

삼국시대

900년대 후백제의 견휜, 고려의 왕건 영금문에서 각축을 벌이다.

900~

고려시대

903.왕건, 나주호족 오씨처녀와 혼인
912.2대 왕 혜종이 태어나다.
940.태조 왕건, 금성군을 나주로 개칭하다.
983.성종, 나주를 목으로 승격시키다.
1011.현종, 거란의 침입을 피해 10일동안 나주에 머무르다.

1400~

조선시대

1462.신숙주 45세의 나이에 영의정에 오르다.
1592.임진왜란 발발 이후 김천일 장군이 의병을 일으키다.
1591.나대용 장군이 이순신 전라좌수사를 보좌하여 거북선을 만들다.
1894.녹두장군 전봉준 나주목사 민종렬과 서성문에서 협상하고 철수하다.

1800~

근대시대

1896.지방행정제도 개혁으로 광주가 전라남도의 중심지가 되다.
1929.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도화선인 나주역 사건이 일어나다.
1925.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와 함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맞서싸운 궁삼면 토지분쟁이 지속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