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문화유산

이천년의 시간여행,

빛을 향해 떠나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외동 128

12개 군현의 육군을 지휘하던 전라우영


현 나주초등학교 자리에 전라우영이 있었다. 세조 3년(1457년)에 나주목사가 병마첨절제사를 겸임하며 나주진영이 설치되었다. 효종 8년(1657년) 전라우영으로 개편되며 병마(육군)지휘권을 가진 무관인 우영장(정3품)이 별도로 배치되었고 우영장을 병마관할지역 군현의 토포사를 겸임하였다. 속읍(관할지역)은 나주, 광주, 능주, 영암, 영광, 남평, 함평, 무안, 화순, 고창, 흥덕, 무장현 등 12개 군현이었다.

고종 32년(1895년)에 우영이 폐지된 후 광무 11년(1907년) 공립나주보통학교가 건물자리에 들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라우영은 천주교 박해 때의 순교지이기도 했다. 최근 남아있던 일부 주춧돌은 천주교회 나주성당으로 옮겨져 순교지 기념유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1895년 동학농민운동을 토벌하기 위한 초토영이 설치되어 많은 동학농민군이 옥살이를 하고 죽임을 당한 곳이다. 동학농민군의 공격으로부터 나주성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이가 정석진이다. 정석진은 나주읍성을 지키기 위한 수성군 조직 중 나주호장이자 도통장을 맡아 크게 활약했다. 이 공을 인정받아 해남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나주 단발령 의거를 선동한 주동자로 몰려 바로 이곳 전라우영에서 처형된 기구한 사연의 장소이기도 하다.